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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시리즈_1. 시니어 모델 강호님과의 만남

우주선J 2023. 11. 19. 19:46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카페에 도착해서 자리를 맡아두려는데, 멀리서도 가죽자켓을 입은 훤칠한 중년의 남성이 주문대 앞에서 메뉴를 보고 있었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포스가 심상치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기~’하고 말을 걸었더니, 역시나 그 짐작이 맞았다. 오늘의 주인공 ‘시니어 모델’ 강호 님이었다. 서울의 한 커피숍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시니어 모델로서 각종 런웨이와 잡지, 방송에서 활약했다. 카리스마 안에 숨겨진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끼가 많았던 젊은 시절

 
그는 5남2녀 집안에서 남자 중 막내로 태어났다. 큰 형님은 영화배우였고, 둘째 형님은 가수였다. 끼가 많은 집안이었다. 이런 피를 물려받아 강호씨 역시 어릴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MBC 공채 탤런트 시험에 도전했었어요. 3차까지 합격하고 4차 시험에 갔는데 아쉽게 떨어졌지요. 연기했던 대사가 아직까지 기억에 납니다. 좋은 추억이지요. 그 이후에는 통기타를 치며 DJ 생활을 했어요. 김수희 씨의 ‘멍에’라는 곡이 열풍이었던 시기였는데,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면 엄청난 환호를 받았죠”  
 
그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전산학과를 졸업한 그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을 하게 된다.
 
“그 시절에 우리 아내를 만났어요. 그 때 당시 우리 아내는 LG그룹에 다니는 똑똑하고 멋진 여자였어요. 모피모델도 했었다니까요. 사실은 저보다 모델 선배에요 하하. 아내 같은 여자를 만나서 함께 살 수 있었다는 것은 제 인생에 가장 큰 축복입니다”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외모와는 다르게 아내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빛에는 다정함이 듬뿍 들어있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정성들여 시부모님의 병간호를 해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1남1녀를 잘 길러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연신 이야기했다.
 

 


갑자기 찾아온 인생의 어려움

 
그 이후 그는 푸드체인점 사업에 도전을 하게 된다. 점포 한 개로 시작했던 사업은 6개의 지점까지 확장될 만큼 꾸준히 성장했다. 현재는 온국민이 다 아는 GS25 편의점이 LG25로 이제 막 태동하던 시기, 편의점 사업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또 90년대 이동통신 붐이 일면서 전산학과를 나와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던 경력을 높이 인정받아 이동통신사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것 같던 시절의 그에게 어느 날 시련이 찾아왔다. 아내가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늘 에너지 넘치고 밝던 아내는 작은 활동만으로도 극심한 피로를 느껴 누워야만 했다. 이에 더해 갑상선 치료약물의 부작용으로 피부 가려움증과 피부발진까지 찾아왔다. 아내는 아파했고, 그런 아내를 위해 그는 매일 약을 발라주며 집안일을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에너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피로감이 심하고 피부가 상하다보니 아내는 외출하기 어려워했어요. 제가 같은 상황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데, 우리 아내는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괜찮다며 웃더라구요. 아내에게는 강한 남편이고 싶어 담담하게 굴었지만, 아내에게 약을 발라주며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은 날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고 하던가. 그 만큼 오랜 아픔에는 당사자도, 그 주변 가족도 견디기 힘든 법이다. 늘 긍정적이던 그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다보니 너무나 힘들더군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좋지 않은 생각들이 계속 들더군요. 이건 아니다 싶어 이겨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술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먼저 술부터 끊었습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어요. 극도로 힘들 때면, 오토바이를 끌고 나가 달렸어요. 온 몸으로 바람을 가르며 찬 공기를 맞으면 답답했던 조금씩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정신력으로 이겨내다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는 그 시간을 견디어 냈다. 조금씩 회복되어가던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나의 남은 인생은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데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내를 행복하게 만드는 법이 무엇이 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내가 느낀 오토바이의 해방감을 아내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오토바이 라이딩을 제안했다. 처음에는 무섭다며 망설이던 아내는 이제 먼저 오토바이로 외출하는 것을 제안할 정도로 라이딩을 좋아하게 되었다. 부부가 한 오토바이로 함께 맞는 바람이 너무나 상쾌했다. 아내를 하루에 한 번은 웃겨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부터 그는 아내에게 윙크를 날리는 윙크가이가 되었다. 그의 능청스러운 윙크에 아내는 소리내어 웃었다.
 
“아내가 또 무엇을 좋아할지 생각해보았어요. 혹시 내가 방송에 나오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심히 시니어모델이라는 것이 있다며 말을 꺼내보았어요. 아내는 단박에 한번 해보라고 하더군요. 말을 꺼내보기는 했지만, 사실 저는 마음 속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나서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강호 씨의 아내가 강호씨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영문을 모르고 집을 나서 도착한 곳은 강호 씨가 이전에 이야기했던 시니어모델 아카데미였다.
 
“아내가 카드를 손에 쥐어 주며, 가서 결제하고 오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일단 상담만 받아보겠다며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날 상담을 하고나서도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돌아왔지요. 실제로 수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요. 제가 말이 없자 다시 아내가 저를 끌고 아카데미 앞에서 내려주면서 카드를 쥐어주더라구요. 오늘은 꼭 등록을 하라면서요.”  
 

 
 


아내 덕분에 시작하게 된 모델 활동

 
아내의 성화(?)로 시작한 모델 수업의 막이 올랐다. 워킹연습과 포즈, 의상활용법 등의 강도 높은 수업이 1년 가까지 진행되었다. 수업 이후 그는 자신이 제대로 배웠는지를 검증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카데미에서 추천받은 몇몇 오디션에 응시하였다. 처음부터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었다.
 
“참가하는 오디션마다 정말 대한민국 모든 모델이 여기 모였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왔더라구요. 그 오디션에서는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도전했고, 그 과정들을 이겨내고 나서 지금까지 왔네요.”
 
그는 그의 모델로서의 예명을 ‘강호’라고 지었다. ‘강호’를 거꾸로하면 ‘호강’이 된다. 시니어모델 활동으로 아내를 호강시켜 주고 싶다는 결심을 담아 지은 이름이라며 그는 웃었다.
 
시니어 모델 활동을 한다는 것은 자기관리의 연속이었다. 몸관리는 어느 때나 쉽지 않은 것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조금 방심하면 살이 찌고 근육이 빠질 수 있기에, 바쁜 일정에도 그는 식단과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32 사이즈 이상의 바지는 만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몸을 움직입니다. 하루에 김밥 한 줄 먹으면서 관리하기도 하고요. 아예 집 한쪽을 헬스장으로 꾸며서, 틈날 때면 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 복근있는 사람입니다. 하하하”
 
시니어 모델로 시작한 그는 연기를 배워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국정원 요원을 맡기도 하는 등 그의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시니어 모델들을 돕는 시니어 모델이 되고 싶습니다."

뒤늦게 모델에 도전하여 그 안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는 느끼는 바가 많았다. 그 어떤 분야보다 혈연과 지연이 중시되고 있었고, 런웨이를 서려면 불편한 진실과 직면하며 이를 감내해야만 참가가 가능한 무대도 존재했다.
 
“시니어 모델을 도전하는 분들을 보면, 인생에서 다른 일들을 하다가 인생 2막에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 모델에 도전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또 다시 이런 모델업계의 관행에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시니어모델들이 더 자유롭게 꿈을 펼치는 문화를 만들어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마침 이런 뜻을 함께 가진 모델들을 만났고, 함께 협회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더 많은 시니어 모델들이 빛을 보고 자유롭게 활동하실 수 있도록 홍보도 하고 재능기부 등의 봉사활동도 하려고 합니다. 시니어 모델 코스를 배워 수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무대에 서고 그에 대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들이 자부심과 희망을 가지고 남은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시는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 맞는 길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

그에게 시니어 모델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마디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뻔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다면서도 스스로에 맞는 길을 찾아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시니어 모델을 시작하여 배우고, 또 실제 모델로 서는 것까지의 과정은 녹녹치 않다. 하나의 정형화된 방법으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길이 쉽지만은 않더라도 이  도전을 하겠다는 분들을 적극 응원한다고 했다.
 
“인생을 사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듯 시니어 모델이 되는데 성공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방법으로 길을 찾아보고, 스스로를 브랜딩 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실패 하는 방법은 딱 하나죠. 포기하면 됩니다. 포기하면 실패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중간 과정의 어려움은 성공의 과정이 됩니다."
 
그는 인생의 후반기를 멋지게 살아내고자 애쓰시는 분들을 응원한다. 자식 도리, 부모로서의 책임, 남편/아내로서의 역할을 넘어 스스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 바란다.
 
“우리의 인생도 지금까지 남이 가르쳐줘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스로 헤쳐나가며 만들어온 것이지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인생 후반기의 새로운 도전이라도 못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 과정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한 시기가 되길 바랍니다. ”